특별하게 미니멀리스트를 고집하지는 않지만-사실 어떤 면에서는 수집광이기까지한- 잦은 여행과 출장으로 내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한 것을 자연스레 익히게 되면서 스스로의 스타일에 대한 적당한 게으름을 합법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100가지 물품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렇게 미니멀한 삶을 추구하다보니 생각지 않은 장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첫번째는 짐꾸리기가 수월해졌다. 이사를 하던, 여행을 가던, 출장을 갈 때 챙겨야할 물품들의 리스트가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퇴출(?)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나면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쓸데없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번째는 물건을 살 때 장바구니에 담아둔 녀석들을 결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과연 살아가는데 필요한 100가지에 들어갈까하는 질문이 떠오르게 되는데 이 질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녀석들의 비율이 80%가 넘는다. 물론 이 물음에 대한 나름대로의 명분을 찾기도 하지만 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확실하게 쓸모없는 지출이 줄었다.
세번째는 공간이 넓어졌다. 정확히는 사용하지 않던 물품으로 인해 차지하던 공간들이 나를 위해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줄어든 짐으로 다양한 수납공간의 가구들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거나 하면서 넓어진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즌별로 새롭게 나오는 신상이나 집에 두면 왠지 이쁠 것 같은 물품들은 호시탐탐 장바구니 속에 담겨져 있어 음주 후 쇼핑의 인내를 시험하게 한다. 긴 여행을 다닐 때는 오히려 문제가 없는데 돌아와서 매일, 혹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룹이 생기다보면 항상 같은 모습의 패션에 고민하기도 하고, 애써 트렌드와 무심한 듯 노력하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가볍게 살아가는 것에 차츰 익숙해 지고 있고, 스스로가 느끼는 적당한 자만심 덕분에 당분간은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